부산 해운대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IL센터)의 '시설화' 정책을 둘러싼 뜨거운 논의가 펼쳐졌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와 한국장애인연맹(DPIKOREA) 주최로 10월 14일 오후 열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이 정책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역행하는 차별과 배제의 서막이 될 수 있다며, 자립생활 당사자 운동의 미래 과제와 연대 방안을 모색했다.
토론회는 'IL센터의 시설화란 유엔CRPD에 역행하는 차별과 배제의 서막인가? - 자립생활 당사자 운동의 향후 과제와 연대 방안을 위한 토론회'라는 주제로 해운대 아프피나유스호스텔 그랜드 볼륨에서 진행됐다.
한국장애인연맹부산DPI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전국 장애인 활동가, 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최 측은 '자립생활은 권리이며, 시설화는 차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IL센터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논의를 강조했다.
인사말을 맡은 장진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회장은 "IL센터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 만든 운동의 결실인데, 최근 국회와 보건복지부의 시설화 정책은 당사자 합의 없이 추진됐다"며, "이는 인권의 문제로, 차별의 재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IL센터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며,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자립생활 운동 도입부터 2020년대 현재 약 300개소 운영까지의 과정을 되새기며 "메이저급 센터의 기득권이 풀뿌리 조직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는 "IL센터의 장애인복지시설화에 따른 향후 과제와 연대 모색"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우 교수는 IL센터가 1972년 미국 버클리센터를 모델로 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서비스 기관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고 설명하며,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시설화 찬성 측은 운영비 안정과 직원 처우 개선을 주장하지만, 이는 자립생활 이념의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며, "CRPD 제19조(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통합) 정신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우 교수는 반대 측 의견으로 "행정적 통제가 운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네 명의 패널이 열띤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영석 한국장애인연맹(DPI KOREA) 회장은 "CRPD 제19조 정신으로 활동하는 IL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설화가 탈시설화 운동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화 구로나눔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는 "행정·법적 통제 시대 IL센터의 자율성·독립성·대표성, 그리고 당사자의 운동성은 어떻게 보장될 것인가?"를 주제로, 정부의 관리 강화가 센터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창현 밝은내일 IL종합지원센터 대표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정중규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부원장은 "IL운동의 정체성 잃지 않는 IL센터 시설화 가능한가"를 각각 발표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IL센터 시설화는 예산 동결과 불투명한 회계 관리라는 명분으로 추진됐지만, 이는 활동지원 서비스와 센터 기능을 혼동한 결과"라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한 토론자는 "신생 센터 난립을 막는다는 주장은 기득권 보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좌장을 맡은 이태성 한국장애인자립생활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오늘 논의가 자립생활 운동의 재정립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행사는 2시간 동안 이어진 후 폐회됐다.
이번 토론회는 2023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2025년 7월 시행)으로 촉발된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열렸다. 개정안은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로 편입해 관리 투명성과 서비스 질 제고를 목적으로 하지만, 반대 측은 "당사자 주도권 상실과 운동성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주최 측은 "향후 연대 모색을 위한 후속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권익 단체들은 "정부가 당사자 의견을 무시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추가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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